1. 메콩강이야기 (24) / 라후족의 전설(1) ㅡ 므어메미메
하얀 눈꽃을 입은 울창한 나무숲이 병풍처럼 펼쳐진 농우 호수 위에서 오색의 깃털로 치장한 새 한 마리가 날아다니며 사냥을 즐기고 있다. 쏜살같이 물속으로 몸을 날려 수면가까이 올라온 물고기들을 찾아 먹기도 하고 하늘 높이 오르며 지저귀기도 한다. 그러다 호숫가 나무위에 앉아 몸에 묻은 물을 털며 깃털을 다듬다 그만 부리를 날개 깊숙이 파묻고 잠을 잔다. 바람소리에 나뭇가지가 흔들리자 깨더니 꼬리를 치켜들고 한 덩어리 배설물을 내뿜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이곳저곳 얼어붙었던 대지가 녹고 파릇파릇 새싹이 고개를 든다. 지난겨울 한 마리 새가 쏟아 부었던 똥 속에서도 하나의 박 싹이 나와 어미 새가 앉았던 나무를 타고 가지를 뻗더니 탐스런 박 열매가 맺혔다. 지나가던 쥐가 먹음직스런 박 열매를 갉아 보았으나 깨지지 않자 돌아간다. 어디선가 날아 온 새 한 마리가 박 넝쿨에 앉아 정성스레 박을 쪼아 대자 박이 깨지면서 박의 아래 쪽 좀 큰 곳에서는 사내아이가 나왔고 위쪽 좀 작은 부분에서는 여?아이가 나왔다. 이들이 호숫가 시조인 \'짜띠\'와 \'나띠\'이다. 짜띠와 나띠가 결혼해 일곱 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들이 장성해 결혼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들이 사는 땅은 너무 아름답고 먹을 것도 풍성 할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어서 여러 강한 부족들이 탐을 내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주변의 다른 부족들로부터 가족을 지켜 순순한 혈통을 지켜가는 것을 가정의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자녀들을 불러놓고 어떤 경우에도 다른 부족과는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 아들 일곱 중에 무려 여섯 명이 주변의 다른 종족들과 함께 결혼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마지막 한 명 남은 자녀의 순수한 혈통만이라도 보존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정들고 사랑했던 터전을 뒤로하고 그곳을 떠난다. 라후족의 첫 번째 이주이다. 그렇게 이주해 므어메미메라는 곳에다 부족 국가를 세운다. 라후어로 므어와 미는 ‘땅’과 ‘흙’을 의미하고 메는 ‘갈다’라는 뜻으로 므어메미메란 \'기름진 땅을 갈다\'라는 뜻이다. 이들은 체구도 숫자도 작았지만 지혜로워 여러 다양한 무기들을 만들어 주변의 강한 부족들로부터 자기들을 지켜 나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석궁이라고 한다. 칼과 창, 활에 의지한 전투에서 석궁의 위력은 대단했다. 주변의 대표적인 큰 무리였던 한족들에게 이들은 눈에 가시였다. 번번이 전투에 패하고 많은 병사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한족들은 첩자를 보내 라후족 집단에 있는 약점을 찾아내게 했다. 첩자가 라후족 마을에 들어와 생활하면서 아무리 그들 집단에 약점을 찾아내 보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특별히 남자들의 지혜는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똑똑한 남편들 덕분에 여유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라후족 여인들은 왠지 바람기가 좀 많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런 첩자의 보고를 받고 한족들은 한 무리의 멋있는 남자 광대들을 만들어 라후족 여인들이 모이는 우물가와 빨래터 주변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악기 연주도 하게 했다. 풍요가 넘치다 보면 헛생각을 한다더니, 라후족 여인들은 이 멋있는 남자들의 노래와 춤, 악기 연주에 점점 빠져갔다. 드디어 쿇루는 용기를 내 먼저 말을 건넨다. \'아저씨, 아저씨, 어쩌면 그렇게 멋있게 생기신 분들이 노래도 잘하고, 악기 연주도 잘하십니까? 우리도 그 악기를 배우고 춤도 좀 배울 수 있을까요?\' 자기들이 쳐 놓은 덫에 걸려 들어온 사냥감을 광대로 가장한 한족 첩자들은 놓칠 리가 없었다. 첩자들이 말한다. 다음 달 보름달이 뜰 때에 이곳으로 나오십시오. 그런데 그냥 나오지 말고 여러분을 독수공방시키는 이유 중에 하나인 남편들이 사냥 갈 때 사용하는 석궁이나 여의치 않으면 그 방아쇠만이라도 가지고 오시오. 그러면 노래와 춤은 물론 이 악기도 함께 드리겠습니다. 라후족 여인들은 너무도 좋았다. 그렇잖아도 그놈의 사냥 때문에 시간만 나면 남편들이 집을 비우고 돌아다니는 것이 싫었는데, 잘되었다 생각한 것이다. 불륜의 감정은 더 깊고 애절하다던가, 라후족 여인들이 다음 보름달을 기다리는 시간은 참으로 길기만 했다. 글.사진/정도연 선교사 (cdy591@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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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동체 이야기 / 공동체 사역을 하면서 (1)
우리 공동체에서는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Team사역이란 개념을 공동체란 말로 바꾸어 사용한다. 지난 시간 동안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얻게 된 아직 확증되지 않았으나 공동체 사역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쟁쟁한 지적 성취와 후원 배경, 사회적 경험들로 무장한 많은 선배들이 있는 단체에 허입된 동역자들을 보면서 참 부러웠다. 선배들이 공항 마중에서부터 시작해 집을 얻고, 살림 도구를 준비하고, 복잡한 비자 문제까지 도와주었다. 특히, 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선배들이 후배 선교사들에게 좋은 정보와 경험을 나누어 주는 모습은 시기가 날 정도였다. 나도 선배 선교사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았다. 그 중에 잊혀 지지 않고 평생 따라 해야겠다고 교훈으로 삼는 것이 있다. 내가 처음 방콕에 도착한 이후 선배선교사님은 나를 데리고 일일이 다른 단체의 선배선교사님들을 찾아가 인사시키고 그분들의 덕담과 경험을 듣도록 했다. 그때 선배선교사님의 사모님께서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김이나 인삼차 같은 것들을 정성껏 예쁘게 포장해 주면서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 드리도록 했다. 한국 선교사뿐만 아니라 싅국 교회의 지도자들도 그렇게 만나 교제했다. 이것이 내가 배운 공동체의 시작이다. 그런데 그런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단체들이 채 1년이 되지 못해 이런 저런 잡음에 휩싸이더니 그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나는 것을 보았다. 입이 닳도록 칭찬하던 동료들을 원망하고 그토록 자랑하던 단체를 불평하다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사를 가고, 심지어 현장을 떠나는 모습까지 보았다. 우리 공동체도 길지 않는 시간 동안 서너 차례 이런 아픔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유들이 다양하겠지만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선교사들이 뎰인에게 필요한 선교비를 스스로 모아야 한다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 처음부터 통제권이 없이 출발한다. 더욱이 한국 교회는 이성적 접근보다는 붐을 타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에 편승할 경우 해결이 참 어렵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는 새로운 가족들에게 \'영적인 자존감에 상처를 받으면서까지 선교비를 모금하는 것은 자제하라\'고 말한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서로 나누어 쓰면서 현장 사역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시간이 좀 걸린 뿐이지 필요한 만큼의 선교비는 모아진다는 것을 이미 체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선교는 영적인 일이므로 세속적인 기준에 의해 영적 자존감에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된다. 건강한 영성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현장에 와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데 이미 상처 받은 상태에서 현장에 오기 때문에 너무 쉽게 세속적 세계관에 빠져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과 나의 나됨의 은혜의 주소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결국 갈등과 분열로 이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공동체는 혼자서 하던 일이 성장해서 사람이 필요한 경우와 새로운 계획을 설계하고 그곳에 필요한 사람을 찾는 경우에 이루어져 간다. 그래서 공동체가 되면 혼자서 하던 일을 효과적으로 나누어서 해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는데도 불러 놓고 혼자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을 찾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공동체 사역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해야 할 일을 사명(Mission)이라고 한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소명의식이 중요하다. 소명에는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열정이 있어야 한다. 비전과 열정이 열매로 맺?지는 과정에는 합당한 지위와 물질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 그냥 믿음으로 가서 전도해도 되지만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 파송하는 절차를 갖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효과적으로 일 할 수 있도록 합당한 자격을 주자는 것이고 그 자격이 필요한 선교비를 모으는데도 보증이 되기 때문이다. 후원단체들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선교비를 넉넉히 보내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그렇다. 선교사들이 이 부분에 약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좀 더 건강한 공동체 사역을 원한다면 리더는 지위가 가지고 있는 힘(Position power)이나 돈이 가지고 있는 힘(Money power)중에서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적파워(Spiritual power)를 주실 것이다. 이 말은 기득권에 대한 것을 포기하라는 의미도 된다.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도 협력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공동체와는 거리가 먼 욕심이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영역이므로 하나님의 영이 친히 이끌어 가시지만 그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이 성경과 교회사의 증거임을 기억해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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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름다운 이야기 / 나에게 선교 현장을 가르쳐 준 사람들 (3) - 반면교사(反面敎師)
배움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스승을 두고 있다. 보편적으로 그의 가르침과 삶이 일체가 되어 나를 이끌어주신 스승이 있다. 또 하나는 당시 서로 얼굴을 대하고 지낼 때는 전혀 배울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관계라고 생각되었던 일과 사람들 속에 숨겨진 교훈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현대 디지털 기술은 마음만 먹으면 시대와 역사에 필요한 가르침을 제시해 주는 많은 선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의 사상과 가르침을 시공을 초월해 제공해 주므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 가르침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고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지혜와 반성이 있다. 대부분의 지혜로운 자들은 경험하지 않고도 역사의 교훈을 통해 시대를 읽고 미래를 준비해 마음의 상처 없이 지혜를 쌓아가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꼭 경험과 상처를 통해서 배워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사적 사건들이 나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한 시대 하나의 이야기로만 생각 할 경우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 내가 오늘에 이르도록 반면교사가 되어주었던 분들과 그들의 경험이 보여준 작은 생각의 편린이 있다. 초창기도 그랬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부족한 소견으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선교사들의 선교센터나 교회 건축 등 부동산에 관계된 것이다. 하나의 목적과 비전을 위해 몇 평의 부지위에 이러이런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식의 보고서와 보고를 보고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작금의 한국 선교는 땅 사고 건물 짓는 것으로 이해되어지는 부분이 많지 않나 생각도 해 본다. 한번은 한 단체가 준비한 대규모 프로젝트 계획서를 본 적이 있다. 한국교회의 분위기를 볼 때 그렇게 큰 땅과 건물을 사고 짓는 것은 낺로 어렵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런 건물이 완공되어진 이후 어떻게 누가 관리하고 사용 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큰 땅과 건물이 마련된 이후 그만큼 선교비 지출도 효율적으로 줄여 나갈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얻은 교훈이 선교지에서의 땅과 건물이란 영혼이 입는 옷과 같다는 것이다. 그 옷을 입고 보여줄 주인공인 사람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이런 사람이 있다는 가정아래 좋은 옷만 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 옷을 입혀보지만 어울려 보기만 할 뿐, 맡지 않아 결국 주인을 만나기도 전에 그 옷은 낡고 해어지게 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보았다. 더욱이 많은 선교비가 들어간 땅과 건물을 관리하느라 주인이 맡긴 사람들까지 잃게 되는 경우를 경험도 해보고 또한 지금도 현장에서 보고 있다. 그래서 얻은 교훈이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센터, 교회 건물 등 부동산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와 선교사를 통해 이곳저곳에 세워진 센터와 공간들이 많은데 진정 공유해 준다고 해도 공유하기에는 그 위치가 너무 불편한 환경에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교단체들이 위치한 곳은 어디를 가나 그 지역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이 거점으로 잡는 곳이 그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치앙마이의 경우 약 110년 전에 도시 전체를 새로운 형태의 도시로 바꾸어 보려는 서구 단체의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와 선교 단체가 소유한 공간들은 대중적이지 못한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아 활용 하는데 불편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도시에 센터를 준비한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지혜를 갖게 되었고, 건물을 갖는 것만큼 선교비도 효율적으로 절약되고, 그 건물을 관리하는 데에는 귀한 선교비가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단체들을 보며 배운 것들이다. 2002년 치앙마이에 문화센터를 건축하려고 할 때 태국의 인구증가율, 도시집중률, 치앙마이 시내에서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곳과 그 이유 등을 조사 했다. 당시 태국의 인구증가가 13년 동안 약 0.7에 머문 것은 이미 자연증가가 멈췄다는 것이다. 또한 이 건물을 관리하는 일로 인해 선교비가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전제아래 건축을 시작했다. 그렇게 세워진 문화센터 공간이 1년 365일 새벽 5시부터 밤 9시경까지 거의 쉴 사이 없이 사용되어짐에 감사한다. 헌당 이후 5년 동안 이 건물과 공간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일로 선교비가 들어간 일도 없다. 오히려 이로 인해 약 20명 정도의 인력이 자립해 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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