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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강편지[마약이 흐르는 메콩강에 복음의 계절을...] 운영자 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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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oreace.co.kr/bbs/bbsView/34/3930707









1.메콩강 이야기 (17) / 미얀마 특구 이야기 3 - 소년병


 


미얀마 특구는 외형적으로 풍부한 지하자원과 국경지대라는 특성을 살려 경제 특구를 지향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색은 특구마다 자체적으로 군사를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구 정부를 지탱해 주는 것


은 건강한 경제 구조보다는
군사적인 힘이다. 경제적 특구의 거의 모든 수익이 자치 정부의 힘을 지탱


하는 군인을 양성하고 기르는데 사용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체적으로 무장 군인의 수가 많은
특구의 힘이 강하게 된다. 지난해 4월 특별한

기회를 얻어 한 특구의
축제 때, 자치정부 군인들 훈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형들과 아저씨들이 완전

군장으로 부대별 대항을 벌이는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
보는 10살도 채 되지 않슴 아이의 눈망울엔

부러움이 가득 차 있었다. 특구 지역에 사는 한 소년에게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었

더니 머뭇거리지 않고 "총"이라고 말하는 소년의 모습 속에
이 지역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볼 수 있었다.

자기 키 보다
큰 AK47을 멘 소년병이 있었다. 아직 엄마의
젖을 만지며 투정을 부릴 정도의 아이가

군청색 군복을 입고 제식 훈련을 하고 있었다.

바지가 너무
길어 둘둘 말았건만 계속 흘러내리는지 연신 추스르며 걷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였다.

훈련이 끝난
소년병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부대 옆 비디오 가게 앞에 모여 있었다. 특구의 힘이

자체 통치권이
있는 무장 군인의 숫자에 있기에, 한 가구당 한 명은
자치 특구를 위해 군인이 되어

야만 한다. 지금은
총성이 멎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작은 국지전이 미얀마 국경 이곳저곳에서

있었다.

그때마다
이 어린 소년병들이 총과 탄약을 메고 밀림을 누비며 아무 생각 없이 퇃을 쏘아 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문명의
맛을 보지 않았더라면 소년병도 없었으리라. 빵을 위해, 성공을 위해,

총을
들어야 하는 아이들.... 그들에게 문명은 저주였다. 차라리
그들에게는 거칠은 자연이 축복이었다.

그들에게 문명은 삶의 질이나 환경을 개선해 주기보다, 철저하게 인간의 이기적 도구로만 사용될

뿐이다. 글.사진 / 정도연 선교사 (cdy591@hanmail.net)


















 


2.공동체 이야기 / 교회 건축 사역을 시작하게 된 동기


 


우리는 소수부족을 위한 교회 개척을 하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먼저 다른 선교부가

들어간 지역은 들어
가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전도하고 교육하는 일에 매진하고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은 현지인 스스로 하게 하였다. 그리고
현지 책임 교육자는 우리와 함께 2년 이상 훈련을 마친

자로 하는 등의 원칙을 세웠다. 이러한 원칙 중 제일 지키기 힘든
것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한국 교회의 특성이 가시적 선교 효과에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지인들은 주변의 다른 선교부와 우리 선교부를 비뎱하곤 하였다. 94년도에 한 신학교 학생들이

단기선교를 와서 붉은
라후족 마을에 세워진 대나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마을 무당이

밖에서 불을 지른 일이 발생하였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대나무 교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일행 중 한 분이 마음 아파하며 작은 헌금을 보내면서 꼭
교회를 다시 세워

달라고 해서 교회를 나무로 지었다. 그 당시 우리가 개척한 한 아카족 교회는 출석교인이 100명이

넘어
서는 부흥을 경험하면서, 교회를 짓기로 하고 온 성도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 한
분과 함께 그 교회를 방문했다. 담임 전도사가 지나가는 말로 "우리도

교회에 불을 질러 버려야 목사님이 교회를 짓는
일에 협력할 것 같습니다." 라고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이 말을 동행한 목사님께 통역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
께서 "정 목사, 이것은

교회를 짓는 사역도 병행하라는 주님의 뜻이다."라고 권면해 주셨다. 사실 이곳까지 건축 ?금을

들고 오셨는데, 현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지목해서 건축하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해서 다시
들고 돌아간 경우도 두 번이나 있었다. 그런 나의 편견과 의지가 당시 뽀꼬

교회를 방문하셨던 목사님의 강력한 권고로
꺾이고 겸허히 교회 건축 사역도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계기가 되었던 \'뽀꼬 교회\'는 선교부로부터 독립하여
아카족 연합체로 들어가 현재

더욱 성장하는 중이다.


 


3.아름다운 이야기 / 약대중앙교회(http://www.yakdae.org) 이태수목사님


 


한참 뜨거운 열정으로 소수부족 마을을 오가며 교회를 개척 할 때였다.

어느 해 2월, 내가 가진 열정보다 더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온 대지를 데우고 있을 때,

지구촌 전도협회 회원들이 전도 훈련과 선교지 탐방을 겸해 태국에 오게 되었다.

마침 팔라뚸을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본
마을에서 쫓겨나 마을

옆 산봉우리를 깎아 새로운 마을을
만드느라 뜨거운 열기와 싸우고 있던 때였다.

대나무를
잘라 벽을 만들고 갈대를 꺾어 지붕을 덮을 이엉을 만드는
분주한 시간에

전도협회 일행을 맞이한 것이다. 그 정도면
귀찮을 만도 한데 모두들 기쁨으로 맞이

하였고, 그들의 일
하는 모습 속에서 전도 팀 일행은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때
이들과

함께 오셔서 우리와 처음 인연을 맺은 목사님이
부천에 있는 약대중앙교회 이태수

목사님이시다. 그분의
손에는 영어와 태국어로 쓰여져 코팅되어진 전도지가 항상


쥐어져 있었다. 미군 부대에서 쌓은 영어로, 또 한국어로
토가 달린 태국어로 떠듬

거리며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 보신 적 있으시냐고 물어보시던

모습 속에서
나는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선교사들의 눈이
영혼에 대해서

살아있지 않다고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에
많은 찔림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첫 만남이

이루어져 오늘
까지 어언 1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전도지를 놓지
않고 다니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분의 신실함에
머리가 숙여진다. 영혼을 그토록 사랑하는

목사님이 섬기는
약대중앙교회의 성장은 나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더욱이 넉넉지 않은 성도님들의 환경이지만, 해외 선교지에
\'한 성도, 한 교회 건축 후원

\'이란 비전을 품고 인도, 중국,

필리핀과 아프리카 ?러 지역에 많은 교회들을 세워나가고
계시는 그분들의 나눔과

섬김에 크나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 은혜에 태국 북부 소수부족 6개 마을과 치앙마이
문화센터의 일부도

동참하게 되었다. 약대중앙교회의 교회 짓기

운동에 동참하신 권사님, 집사님, 성도님들이 생활의 여유가 있는
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미안하고 더욱 감사하며,
나의 보잘 것 없는 헌신이 참 많이

부끄러웠다. 우리 소수부족
성도들이 이런 사연을 이해하기를 바라며 기회가 될 때마다

알려
주었지만 얼마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분들의
헌신에

감사하며 기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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