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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강이야기 (22) / 카렌족의 60년 전쟁 (4) - 카렌족의 전설 운영자 200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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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콩강이야기 (22) / 카렌족의 60년 전쟁 (4) - 카렌족의 전설


 


카렌족은 그 시초가 어디에서부터 유래되어 왔는지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 ‘티비커비 ’라는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미하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 카렌족의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큰 ‘모래의 강 ’을 건너 왔다고 전해지는데 , 추측하건데 오늘날의 티베트와 몽고의 고비 사막 근처가 아닌가 생각된다 . 이 지역에서 약 4500년간을 살다가 서서히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 한때 쓰촨 성 ( 四川省 ) 서북부에서 강대한 국가를 이루다 점차 여러 갈래로 뒤섞여 버린 강족 ( 羌族 )의 일부가 동남아에 자리를 잡은 카렌족이 아닌가 여겨진다 . 이렇게 이주하는 과정에서 , 인류의 선조가 박에서 나왔는데 제일 먼저 나온 사람들이 카렌족이라는 이야기와 ‘황금의 책 ’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진다 . 그 신화에 의하면 카렌족의 조상에게는 7명의 자녀가 있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가득 담겨 있는 책 한 권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 그 책의 가르침에 따라 평화롭게 살아가던 그들에게 불행이 닥치기 시작했는데 , 이는 유목 생활과 정복 전쟁 중에 다른 여섯 명의 자녀보다 지혜롭고 총명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이끄는 카리스마까지 겸비해서 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막내아들이 사라져 버린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 그 잃어버린 형제를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동안 설상가상으로 그 황금의 책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 그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설명해 주었던 아들과 책을 모두 잃게 된 것이다 . 그 때부터 그들은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그런 가난과 힘든 이주의 삶 속에서도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 그 막내 형제는 지혜롭고 똑똑하기 때문에 죽지 않고 언젠가 다시 집으로 찾아 올 것이고 , 막내가 돌아오면 다시 평화와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이어가던 어느 날 , 그 동생이 건강한 몸으로 기인의 풍채를 풍기는 어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 그는 이주하는 도중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누군가에게 잡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어디론가 끌려갔지만 , 그곳에서도 자신의 지혜와 총명으로 주변을 감동시켜 자유를 누리며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게 되었다고 하였다 .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어 그 동안 자신을 가르쳐 준 ‘황금의 책 ’을 찾아 가지고 그의 부모와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 그의 가르침과 지혜는 놀라웠다 . 그의 많은 형제들이 그를 따르게 되었다 .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한 가지를 잊지 뮸고 잘 기억하라고 거듭 강조하여 가르쳤다 . \'언젠가 때가 되면 ‘톰메빠 ’라는 한 존재가 백마를 타고 우리를 찾아 올 것이다 . 그때 그분을 잘 영접하라 . 그러면 그분이 우리의 잃어버린 땅과 나라를 회복시켜주는 것은 물론이며 가난하고 고통스런 이 삶에서도 해방시켜줄 것이다 .\'라고 예언하였다 . 그 때부터 카렌족은 그 백마를 타고 올 ‘톰메빠 ’를 애타게 기다리게 되었다 . 카렌족이 영국군 편에 서서 일본군과 싸웠던 이유가 이런 전설에 의한 것일까 ? 그 이면의 진실이 궁금하고 알고 싶다 .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이 구전으로만 내려오다 보니 서로 다른 방향에서 상황에 따라 덧붙여지고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 중요한 것은 영국이 미얀마를 침공했을 때 카렌족이 영국군 편에 선 것과 이런 유사한 전설을 가지고 있는 카렌족과 라후족이 모두 기독교로 개종한 비율이 다른 부족보다 많다는 것은 한번쯤 그 연관성의 진실을 생각하고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카렌반군 중에 ‘신의 군대 (God\'s Army)’라는 반군이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온 어린 쌍둥이들을 리더로 섬기며 따르고 있다 . 이 배경에도 이러한 전설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백마를 탄 영웅을 하얀 피부의 서양 선교사로 이해하고 그들이 전해준 성경책을 잃어버린 황금의 책이라 여겨 환대했을지도 모른다 . 지금 카렌족이 절실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 있다 . 잃어버린 형제가 돌아와 60년 전쟁에 지친 부모 형제들을 구원해 주는 것이다 . 그 막내가 가르치고 일러준 ‘톰메빠 ’가 백마를 타고 와서 저 밀림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자유와 평화와 독립을 부르짖으며 죽어가는 그의 형제들을 구원해 주길 절실히 기대한다 . 이 전설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룀로 지어진 이야기일지라도 오늘날 카렌족에게 이 전설은 마지막 희망이 되어 있다 . 그들이 기다리는 ‘톰메빠 ’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이시길 간절히 바라며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저들을 섬기는 길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구한다 . 글 .사진 / 정도연 선교사 (cdy591@hanmail.net)

 


2. 공동체 이야기 / 오픈 공동체 (2)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한 오픈 공동체 사역은 매년 7월부터 8월 , 12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로 기간을 정해 특별한 순서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 오픈공동체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선교 사역에 대한 나눔이다 . 선교 현장의 사역은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 선교사나 , 장기캷 헌신한 사람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 목사 선교사와 장기 사역자를 도와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현장을 돕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단기 팀도 필요하다 . 이제 선교 현장에서 단기 팀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한 파트너가 되었다 . 파트너는 있어도 그만 , 없어도 그만인 대상이 아니다 . 그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의미이다 . 많은 경우 선교사를 초능력자 수준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 선교사는 혼자서 고아원 운영 , 교회 개척 , 신학교 교수 , 그리고 이곳저곳 축지법을 쓰는 홍길뾵처럼 여러 지역을 사역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 한국에서 한국어를 가지고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 개척도 어렵고 힘든데 , 문화와 언어 , 기후와 환경이 다른 곳에서 , 그것도 혼자서 그 모든 사역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그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팀 사역과 단기 선교사에 대한 이해와 역할 분담의 출발점이다 .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먼저 단기 팀을 맞는 우리의 생각이 변해야 한다 . 후원 관계에 있는 사람들로 현장을 확인하게 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사역에 대한 비전므 제시하며 더 많은 후원자를 개발하겠다는 평면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 이방 문화 속에 놓여 있는 선교 현장에는 한국 교회와 사회가 배워야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 . 그런데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고 주려고만 하다 보니 선교 현장을 배우고 활용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 사역의 현장만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 일반 패키지여행보다도 유익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 그 가운데에서 잠재되어 있는 깊고 폭 넓은 세계관을 보여주어야 한다 . 우리는 현장의 가장 낮고 천한 모습에서부터 가장 ?은 수준의 삶을 다 보여주고자 한다 . 우리 인간에게 있는 양면성을 모두 느끼고 체험하기를 바란다 . 선교사들의 성공담만 말하지 않고 그 한 번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 겪은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런 중에도 인내하고 견디어 온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보여주고 싶다 . 그런데 문제는 오시는 분들의 생각이 편협하고 그 열정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 자기만이 느끼고 생각하고 , 주고받기를 원하는 은혜의 색깔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 모두들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먹고 자며 사랑을 나누길 원한다 . 다양한 음식 문화를 체험하고 건강하게 지내다 돌아가는 것보다는 아주 먹기 힘든 음식을 먹어 보기를 원한다 . 옳은 이야기인 것 같으나 사실 그것은 무지하고 오만한 생각이다 .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그런 체험을 해보겠느냐고 이야기한다면 그런 측면에서는 인정한다 . 그러나 한편 현지인의 입장에서 보면 , 오신 손님들 , 그것도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에서 온 분들로 인해 더 높고 고급스런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단기 팀을 맞을 때이다 . 우리의 틀에 갇힌 생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재단하려고 하면 보이지 않은 저들의 높은 수준의 문화와 삶의 영역들은 놓칠 수 있다 . 현지를 배려하지 않는 손님 , 그리고 오는 손님의 입장만 고려하는 선교사에 의해서 선교 현장은 건강한 모습을 잃어가기도 한다 . 자칫 편견에 빠질 수 있고 , 그러한 편견으로는 건강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이룰 수 없다 . 선교사들에 대해서도 현지인 수준의 삶을 요구한다 . 그러나 선교는 총체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숙을 요구한다 . 복음의 능력은 그들을 과거의 삶의 방식과 환경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하고 변화를 요구한? . 복음 안에는 생명이 있고 생명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 정체되고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 활발하게 돌아가는 동영상이다 . 편견적인 사고와 습관에 굳어버린 어른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젊은데도 생각이 굳은 대학생 리더들을 보면 더욱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 캠퍼스 사역에 비전과 능력이 있는 청년들이라면 온종일 캠퍼스에 있는 것이 즐거울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힘들 것이다 . 또한 많은 돈을 들여 온 먼 길인데 , 그렇게 한 곳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은 효율적이 아니지 않은가 ! 새벽 재래시장에서부터 저녁 때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 씻고 밥 먹고 쉬고 하는 저들의 모든 일상을 좀 더 섬세하게 관찰하여 배우기를 바란다 . 그들의 문화와 언어와 관습 속에 숨겨진 것들을 이해하고 찾아보길 원한다 . 그것들 속에 어쩌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것의 단초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먼저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접근한다면 보다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 내가 행하는 것은 옳고 저들은 미개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어떻게 이런 문화와 전통이 싹트게 되었는지를 고민해 보고 스스로 깨닫게 되는 지혜로 인해 흥분되어 밤잠을 설치길 소망한다 . 야누스와 같은 나의 다른 면을 발견하고 마음껏 펼쳐보길 바란다 . 가난해서 보잘 것 없고 무식해 보이는 저들보다 더 못난 바보가 되어 섬기기를 바라고 그 섬김에서 보화를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

 


3. 아름다운 이야기 / 로이퍼 전도사 - 나에게 현장을 가르쳐준 사람 (2)


 


선교는 보냄을 받은 땅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그 영혼들을 위해 맡겨진 재물을 목적에 맞게 , 신실하게 관리하여 더욱 풍성하고 성숙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 24:45-51). 이런 선교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고사하고 교만하기까지 한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기 위한 재물을 동시에 맡겨주셨다 . 나는 선배 선교사를 통해 훈련된 현지 동역자 몇 명과 지역별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동산도 물려받았다 . 카렌족이 집단으로 살아가는 옴꺼이 지역과 메콩강에 대한 비전을 품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치앙라이 메짠 지역이 바로 그러한 곳이다 . 이 두 지역을 중심으로 한 메콩강 공동체의 사역은 이십여 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


옴꺼이 지역에서 나에게 맡겨진 것은 로이퍼라는 젊은 동역자와 5000평 전도의 센터 부지에 15평 정도의 목조 건물 한 동이었다 . 로이퍼 전도사의 아버지는 그 지역의 큰 무당쳀었고 불교를 믿었는데 , OMF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 로이퍼 전도사가 8세 때였다 . 그도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가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지만 산 속에 사는 여느 산족 아이들처럼 산을 동무삼아 자라나다가 그의 마을이 먼저 개화되는 덕분에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 그러나 중학교에는 진학하지 못하고 선교사들이 하는 성경학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던 중 17세 때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헌신해 단기 성경 훈련을 받고 18세부터 전도인의 삶을 살면서 틈틈이 공부해서 검정고시로 고등 과정을 마쳤다 . 그가 1년 과정의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홍콩선교회와 동역하면서 친구 루이와 함께 옴꺼이 지역을 개척하는 중에 선배 선교사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 그가 깊은 밀림을 헤치며 두려움 없이 걸어 다니며 한 마을 , 두 마을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워 나가는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에 , 나는 그를 만났다 .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반가이 맞아 대접해 주고 이것저것 자세히 알려 주었다 .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생한 한 가지 기억이 있다 . 치앙마이에서 옴꺼이로 가는 차 안에서 무려 2시간이 넘도록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 당시에 100% 이해하지 못해 나중에 다시 물은 적이 있는데 , “양보 ”라는 말이었다 . \'우리 카렌족은 평화를 사랑하고 다툼을 싫어합니다 . 그래서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양보하려고 합니다 . 저희 아버님은 언제나 \'네가 양보해서 다툼이 없게 하라 \'고 가르치셨습니다 .\'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 그는 나에게 카렌족의 고통의 역사를 들려주었고 슬픈 이야기들이 있는 현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 1주일씩 산길을 걷고 아슬아슬한 산길을 운전해 주면서도 불편한 기색 없이 늘 웃는 얼굴이었다 . 길고 힘든 산길을 걷느라고 피곤에 지친 내가 쓰러져 자고 있는 시간에도 나무를 모아 물을 데운 후에 나를 깨워서 샤워하라고 말했다 . 피곤해서 그냥 자겠다는 나에게 어리광스럽게 달래며 그래야 내일 걸을 수 있다고 말했던 그의 사랑과 양보가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 말도 되지 않은 나의 태국어를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 무엇보다 전혀 상황에 맞지도 않고 일방적인 , 초보 선교사의 이야기와 지시를 따라 순종하려 했던 그의 가르침에 감사한다 . 그의 순종과 양보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르침이었다 . 나에게 이놷 스승이 있음을 자랑하고 싶다 . 그는 이렇게 10년 동안 현장을 섬기다가 27살에 정규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고 졸업한 후 , 32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 하원의원으로 있던 기간 그의 수고로 수많은 카렌족들이 태국 국적을 얻었고 , 토지 등기도 하게 되었다 . 20세 때 부터 옴꺼이 지역 연합 성경 수련회를 인도해 왔는데 , 근래에 와서는 2만 명 정도가 모이는 대형 수련회를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 2002년부터 옴꺼이에 카렌족 신학교를 세워 제자를 양육하고 있다 .


지나고 보니 본의 아니게 실수하고 상처를 주었던 순간들이 있다 . 주님이 맡기신 영혼을 섬기고 사랑하기보다 물질이 중심이 되어 현지 사역자를 대하고 판단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 하나님이 세워주신 현지인 리더십을 진정 동역자로 인정하지 못하고 , 한 영혼이 자라는 것에 대한 이해보다는 맡겨진 재물이 바르게 사용 되는 것에 더 민감했던 경우도 있다 . 선교사가 물질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면 사람이 남는다 . 그러나 재물을 남기려 하면 영혼을 잃을 수 있다 .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이것을 살낄 수 있는 나의 가슴에 후회란 아픔이 암처럼 남아 있다 . 후회란 기회가 주어져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하기 싫고 교만해 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마음의 아픔이다 . 늦게라도 나를 향해 인내하고 참아준 이들에게 빚을 갚고 싶다 . 반면교사라고하지 않은가 . 나보다 먼저 출발한 수 선배들의 성공과 실패의 현장을 보고 갈 수 있는 여유가 한국 선교사들에게도 있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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